redGen's story
(2016-4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문학-소설] 본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저, 정영목 역, 청미래.
정말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드 보통스럽게 사유할 꺼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실 너무 읽기 힘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3번 좌절했었는데, 이 책도 좌절하고 포기할 뻔 했다.
번역도 다소 난해하고, 저자가 써 놓은 꺽쇠괄호안의 글들이 책을 물 흐르듯 읽는 걸 계속 방해했다.
어쨌거나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줄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키스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한 구속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유를 상실당하는 것은 괴롭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유머가 필요하다.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미학적 판단은 "결정 근거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나오는 견해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오아시스 콤플렉스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한다. 그런 믿음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연인에게도 네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상상한 것에 불과하냐 하는 질문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미망[사랑, 자신이 달걀이라는 믿음]에 빠져서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주는 것[비슷한 미망에 빠져 있는 클로이와 같은 연인, 토스트 한 조각]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미망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그것을 믿을 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때만 해가 된다.
연인에게는 상대의 특징들을 의식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싶은 요구가 생긴다.
어떤 눈도 우리의 "나"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우리 가운데 어느 부분은 절단당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치명상이든 아니든.
우리가 타인을 파악하려고 할 때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해란 나의 생물학적 특징, 계급, 심리적 역사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존재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거기에 우리의 가장 깊은, 가장 표현할 수 없는 소망들이 모두 비친다.
성숙이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내야 할 감정과 나중에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인들은 단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랑의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우리는 초월적 가치가 아니라 선호에 기초해서 도덕적 판단을 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를 불쾌하게 하는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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