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Gen's story
(2023-14) 긴긴밤 [문학-소설] (루리) ★ 본문
긴긴밤
루리 저, 문학동네, 144쪽.
너무 아름다운 소설이다.
코뿔소 '고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랐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기에, 아프거나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 곳에서 자라던 고든은 어느 날 바깥 세상이 궁금해서 고아원을 나오게 된다. 코뿔소 무리를 만난 고든은 가족을 만들게 되지만 어느 날 밀렵꾼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물원으로 잡혀오게 된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코뿔소 '앙가부'와 친구가 된 고든은, 그와 함께 탈출을 꿈꾸지만 또 다시 친구를 잃고 자신의 뿔도 잘리게 된다. 그러다 전쟁(?)으로 인해 동물원이 폐허가 되자 거기를 탈출하게 되는데 이때 알을 들고 나오는 '치쿠'를 만난다. 치쿠는 '윔보'와 함께 부모 잃은 알을 돌보다가 전쟁통에 윔보를 잃고 동물원을 탈출하다 고든을 만나, 둘은 함께 바다를 찾는 긴 여정을 함께 한다. 고든은 치쿠의 투덜거림에도 그가 있어 악몽을 꾸지 않고 고통을 견딜 수 있어 치쿠를 좋아한다. 그러나 치쿠마저 오랜 여정에 지쳐 세상을 떠나고 때마침 알에서 깬 아기펭귄을 만나게 된다. 고든은 살아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지쳤지만 아기펭귄을 바다로 인도하기 위해 묵묵히 길을 걷는다. 초원에 도착한 고든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아기펭귄에게 너만의 바다를 찾아 떠나라고 하고, 고든과 함께 코뿔소가 되고 싶다고 한 아기펭귄이었지만 고든의 권유에 홀로 길을 나서 바다를 만난다.
모든 장면이 다 너무 아름다웠다. 고든은 코끼리 고아원을 떠난 이후로 온통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만난 친구들을 통해 다정한 위로를 받고 연대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매우 짧은 그림 소설이지만, 안에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담겨있다.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소설이다.
책건문.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12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15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87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94
“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게다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인데, 내가 너를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정말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나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렇다니까.”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 줄까요?”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99
“노든, 복수하지 말아요.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
내 말에 노든은 소리 없이 울었다. 노든이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지쳤고, 엉망진창이었다. 104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게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 색 지평선을 찾아서.”
“내가 무슨 수로 혼자 바다를 찾아가요? 그리고 치쿠는 나에 대해서 몰라요. 나는 여기가 좋아요. 여기에 있을래요.”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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