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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9)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역사] (사이토 다카시) 본문

Report of Book/역사

(2020-39)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역사] (사이토 다카시)

재도담 2020. 9. 7. 11:56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저, 홍성민 역, 뜨인돌, 296쪽.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차는 전혀 다른 맛과 향을 가진 중국차, 일본차, 홍차가 있는데 세 가지 모두 똑같이 '차나무'에서 만들어짐. 맛과 향의 차이는 제법製法에서 오는 것인데, 녹차는 딴 찻잎을 가열처리한 것으로 발효하지 않은 것. 우롱차나 푸얼차(보이차)는 발효 도중 찻잎을 가열함으로써 발표를 멈춘 반발효차. 그리고 홍차는 나무에서 딴 찻잎을 건조시켜 비벼서 완전 발효시킨 것. 
차는 현재의 중국 원난성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재배되었음. 처음에는 채소처럼 조리해 먹던 찻잎이 후한시대(AD25-220)에 마시는 차로 개발되고, 서민에게까지 보급된 것은 당나라(AD618-907) 때. 유럽에서 처음으로 차를 마시게 된 나라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차를 대량으로 구입해 본국으로 보냈는데 이 때의 차는 녹차. 18세기 후반에 반발효차인 우롱차를 개량해 홍차로 개발. 
커피 문화권에서는 일의 피치를 올리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차 문화권 사람들은 한숨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이 있음. 따라서 커피 마시는 시간을 'Coffee Break', 차 마시는 시간을 'Tea Time'이라고 부르는데 이유가 있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도 처음에는 차 문화권이었으나, 1773년의 보스턴 차 사건으로 커피 문화권으로 바뀜. 프랑스와 벌였던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된 영국은, 미국에서의 홍차 판매 독점권을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주고, 동시에 그 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려 했는데, 이에 반발한 미국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중이던 동인도회사의 배를 습격해서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 보스턴 차 사건. 이 사건으로 미국은 비싼 찻잎을 영국으로부터 사들이는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됨.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가 비교적 연한 것도 비싸진 가격 때문에 마실 수 없게 된 홍차를 그리워 한 탓.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보이지 않은 원인 중 하나도, 차 문화권에서 활력 있는 분위기의 커피 문화권으로 바뀌게 된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 금과 철 

금은 옛부터 신을 상징했음. 금=신성=권력. 금본위제를 통한 화폐로서의 금. 
철을 인류 문명이 처음 사용한 것은 BC15세기 히타이트족 이전부터였으나, 히타이트족은 불순물을 제거해 철을 강하게 하는 '정련기술'을 독보적으로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됨. 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AD11세기 경, 유럽에서 수차水車의 이용이 확산되면서부터. 제철에는 1천℃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데 수차의 동력을 이용해 다량의 바람을 용광로에 불어넣을 수 있게 되면서 철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게 됨. 철제 농기구는 땅의 개간을 용이하게 만들어 '중세의 농업혁명'이라 불리는 대약진을 가져옴. 
프로이센 제국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曰, "큰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를 통해서 결정된다."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근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경제적 중심과 문화적 중심이 나뉘게 됨.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고, 경제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 않았음. 
우리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동물이 무리를 짓듯 하나의 생물러서의 욕구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도시가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4. 근대화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자본주의는 엄격함을 가진 프로테스탄트의 세계를 중심으로 확대됨.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의 직업을 신이 각자에게 부여한 소명으로 생각했고, 노동이야말로 '신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음. 즉 그들은 직업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생 일하는 것이 신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했음. 프로테스탄트는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으므로 돈을 쓸 수 있는 길은 '투자'뿐이었음. 이러한 투자가 계속 확대재생산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부가 늘고,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탄생의 모체이자 메커니즘이 되었다고 막스 베버는 주장함. 
지금도 자본주의가 가속시킨 근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가 있는데, 사실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자분주의의 구조가 시스템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성실함과 근면함, 합리적인 정신이다. 

5.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독립운동은 한마디로 '이민족의 지배로 상실한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은 자긍심과 정체성을 빼앗기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정체성과 자긍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원한'이 남기 때문에 소수민족은 저마다 독립에 목숨을 걸게 된다. 이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은 세계의 제국사를 읽는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제국의 야망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남자의 욕망의 발로. 예전의 제국과는 다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보면 '제국의 야망'을 발견할 수 있다. 21세기 최대 공룡기업들이 가진 멈출 줄 모르는 확장욕, 사그라들지 않는 지배욕은 제국의 야망 그대로다. 
제국의 야망이 가장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경제 분야다. 새로운 제국주의에 의한 패권다툼은 금융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불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의 영토적 침략은 줄었지만 그 대신 금융기관들이 탐욕스럽게 먹이를 찾고 있다. 현대사회는 보이지 않는, 국제적인 대규모 자본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 전 세계로 확대되어가는 제국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다. 자본은 '국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질수록 돈을 벌고,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대의 금융제국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도 결국은 자녀와 후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이다. 이런 욕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이다. 본능적인 욕망과 싸워서 이성이 승리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원숭이 산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어쩌면 인간의 진짜 진화는 그런 욕망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야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법률로 세습을 금지하는 것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지 모른다. 

6.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여기서 욕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고자 했기 때문에 사람들 하나하나의 근본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무시한 채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채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은 여전히 욕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현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상황에 따라 아군도 될 수 있고 적군도 될 수 이쓴 '몬스터'를 적절히 길들이는 지혜다. 
'브랜드에 대한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존재와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7. 20세기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착취와 억압을 당하던 노동자들이 힘을 갖게 되면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자유는 더욱 억압되고,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으며, 수많은 생명이 희생을 당해야 했다. 칼 포퍼는 "마르크스주의는 '반증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족을 학살한 인물-마오쩌둥, 스탈린, 폴 포트-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혹은 공산주의 국가를 지향했다. 
사회주의의 실패를 러시아혁명 직후부터 예언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막스 베버는 『사회주의』에서 "관료제화는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도 공통적으로 흐르는 역사의 필연이자 숙명"이라고 말한다. 베버는,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기 떄문에 그런 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버 曰, "국가사회주의는 노동자를 예속시킨다. 노동자는 국가에 대해서는 파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사회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예속성이 근본적으로 강화된다." 

8. 위기가 만든 파시즘이라는 괴물

파시즘의 사상은 ① 그 국민사회가 빠진 심각한 '통합의 위기'를 내셔널리즘의 고양과 강렬한 '지도자' 숭배에 의해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② 단, 파시즘이 단순한 보수반동과 다른 점은 내셔널리즘과 '지도자' 숭배에 그치지 않고, 기성의 전통적인 지배체제의 과감한-그러나 권력적의적인- 재편성을 원한다는 데 있다. 재편성의 구성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과 기존의 지배층에 대한 반발에 유래하는 독특한 이면성을 나타내게 된다. ③ 그렇게 되는 것은 파시즘 사상이 그 나라의 지배층의 위기의식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몰락의 위기에 직면한 계층의 위기의식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의 철학'과 '사회 다위니즘'이라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파시즘을 사상적으로 지탱해왔다. 
[ 선전은 모두 대중적이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이 목표로 하는 대상 중 최하부류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조정되어야 한다.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획득애햐 할 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한 지적 수준은 그만큼 더 낮게 해야만 한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진지하고 냉철한 사고나 이성보다 감정적, 혹은 감상적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복잡하고 않고 매우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긍정 아니면 부정이며, 사랑 아니면 미움이고, 정의 아니면 불의이며, 참 아니면 거짓이다.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든가, 혹은 일부분이 그렇다는 일은 없다.] - 히틀러의 《나의 투쟁》 
사람은 불안해지면 자신과 다른 것을 찾아내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9.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서양근대는 악의 화신이다. 서양근대에는 제국주의 하에서 전쟁과 침략이 이루어졌고 대량학살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일신교 3형제의 집안다툼이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일신교들 가운데 가장 침략행위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이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의 대부분은 이 종교 삼형제의 집안싸움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다. 
종교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근대라면, 현대는 그 반동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중세와 같은 맹목적인 신앙과는 또 다른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는 시대이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에 큰 영향을 준 프로이트는 그런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힘의 원천으로서 '무의식'을 주장했다. 또한 융은 그 무의식 안에는 개인의 경험을 뛰어넘는 선천적이며 인간에게 공통하는 구조영역이 있다고 하고 '집학적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제국주의는 기독교를 이용하였다.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종교에 의한 분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10.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무슬림이 모두 공격적이고 세계평화에 위협이 된다면 문제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그들은 기독교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이고 평화지향적이다. 
근대 이전에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세계보다 이슬람 세계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 유럽의 근대과학은 이슬람 문화의 유입이라는 자극에 의해 시작되었다. 피보나치가 아라비아 숫자를 보급시키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로마 숫자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0'은 원래 인도의 발명품인데 그것이 먼저 이슬람권에 전해졌고,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따. 그런 의미에서 유럽근대과학의 발전은 이슬람의 아라비아 숫자 없이 성립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