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검사들의 수사 비위非違가 문제 제기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잘못된 기소와 판결이 사후에 뒤집히는 경우도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결과의 이상함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밝혀진 것들이었다.
과정이, 즉 검사가 어떻게 사건을 만들어가는지가 날것 그대로 국민 앞에 공개된 것은 이번 박상용 검사 녹취록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이라는 사실 자체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버린 조작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이런 행태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생각해보면, 구조가 보인다. 검사는 종종 증거가 아닌 직관에서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사건에 손을 댄 이상, 유죄 판결을 받아야만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는 조직 문화 안에서, 성취 지향적인 사람일수록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증거를 꿰맞추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여기에 검사동일체 원칙이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한 검사가 구성한 사건의 논리를 다른 검사가 독립적으로 반대 추론하는 내부 견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의심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기소가 되고, 기소는 판결이 된다. 피의자는 그 과정 어딘가에서 이미 삶을 잃는다.
나는 이런 조작 기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범죄보다 엄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범죄는 감각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폭행이나 강도는 누구나 즉각적으로 그것이 범죄임을 알아챈다. 그러나 조작 기소의 폭력은 서류 안에 숨어 있다. 피해자가 무너지는 과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잔인함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둘째, 검사가 쥔 칼의 무게는 다른 어떤 사인私人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과 비교할 수 없다. 기소 한 장으로 누군가의 직업, 가족, 사회적 존재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힘을 남용했을 때의 처벌은 그 힘의 크기에 비례해야 한다.
셋째, 솜방망이 처벌은 재범을 부른다. 조작 기소를 통해 얻는 것(승진, 명성, 조직 내 입지)이 잃는 것보다 크다면, 그 유혹은 언제든 다시 작동한다. 처벌의 무거움이 억제력이다.
2015년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증거 조작이 법원을 통해 확인되었음에도, 해당 검사들은 형사처벌은커녕 징계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소독점주의라는 구조 안에서 검찰 스스로가 자신의 비위를 처벌할 유인이 없고, 외부에서 견제할 수단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구조적 무책임이 반복을 허용해왔다.
국가가 부여한 권한으로 무고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도,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는다면—그 시스템이 사회를 온전히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조작을 일삼고도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는 저들에게 양심을 기대하는 것도, 그 시스템에 자정작용을 기대하는 것도, 애초에 그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