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7)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사회] (박선화)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박선화 저, 한길사, 288쪽.

1장 울분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최악보다 차악이나 사소한 것들을 더 증오하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늘 더 강하고 악한 이들이나 사회제도보다 내 주위의 더 작고 힘없는 것들에 분노한다. 또한 세상을 좀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이들의 부족함이나 흠집에는 냉소하고 쉽게 비난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몸을 사린다. 41
강자는 강자라서, 약자는 약자여서 힘과 권력을 선호하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다. 동물의 본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나의 불평등과 타인의 불평등을 같은 무게로 인식하지 못하는 둔감함과 이기심에 대한 부단한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동물성은 인간성보다 강력해서 잠시라도 성찰을 게을리하면 이기의 발톱이 살을 뚫고 오만의 어금니가 날카롭게 돋아나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조화롭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남보다 더 누릴 것인가에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46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조건이나 배경을 보며 우열을 나누기보다 개개인의 실력과 특성을 살피는 경향이 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일수록 강한 집단에 소속감을 갖고 약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다. 54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나 사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일수록 분노나 처단, 응징 같은 감정적 배설을 쉽게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반면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이거나 전문적 식견이 깊은 사람들은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에 이르렀다면 드러난 문제는 대개 빙산의 일각이고, 더 큰 핵심 원인이나 배후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62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무자비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관대한 자 앞에서만 발톱을 드러낸다. 모세도 인간이기에 신께 빌어 불벼락이라도 내리고 싶었을 텐데 끝없이 인내하며 스스로를 성찰했다고 한다.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68
2장 공감불능 시대의 다정한 위로
정치·사회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들이 '소외와 고립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단지 심리치료나 사회·보건복지적 시각 때문만이 아니라, 외로움이 민주주의의 적이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14
주위를 둘러봐도 미혼의 친구들이 노부모의 삶에 실질적인 도 움과 활력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딸들이다. 하지만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던 시대에도 돌봄 노동은 사실상 며느리들의 일이 었던 것을 보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든 돌봄은 여성과 약자들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119
살아갈수록 집안일이나 돌봄 노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크게 깨닫게 되었기에, 돌봄 노동이 의무교육처럼 모든 사회구성원의 필수과정이 되 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어떤 존재도 예외가 없는 생로병사를 온몸 으로 체화하며 깨닫는 인생에 대한 이해능력이야말로 핵가족, 노령화, 디지털 시대의 기본 역량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다. (…) 인간은 왜 이토록 값진 돌봄을 하찮게 여기고 타인 위에 군림하는 삶을 추앙하게 되었을까.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보살 펴야 할 시간에 평생 만날 일도 없는 온라인 공간 속 누군가와의 삶을 비교하며 욕망과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일들은 하지 않는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120
3장 적절한 공존의 거리
장식장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물건만큼 서랍 속에 무심히 굴러다니는 아스피린이나 테이프도 유용하고, 비싼 가전제품뿐 아니라 화장실의 변기솔이나 수세미도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물품이다. 진화되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오늘, 여기, 내가 아는 정당성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만 속단할 수 없는 생존 과 공존에 필요한 기능과 미덕이 존재함을 깨달아간다. 149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준거집단의 친구를 가져본 이들일수록 자신과 다른 집단에 훨씬 관대해진다. 157
오래전 친하게 지냈던 성소수자 직장 동료를 통해 다양한 성정체성은 동물계에 존재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성정체성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여성이 말도 정서도 잘 통하지 않는 남성과 살겠냐는 말은 이런 측면에서 촌철 살인의 유머다.
한국은 2021년 진행된 세계가치조사에서 "동성애자와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79.6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치인 239퍼센트보다 3배 이상 높다. 즉 동성애자 혐오가 가장 심각한 나라이자, 이로 인해 목숨을 끊거나 고통받는 이들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서구의 정통 교회보다 더욱 보수화된 기독교가 편협성 강화에 한몫했겠지만, 경제 발전만큼 다양성은 체화하지 못한 사회의 폐쇄성도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우려가 큰 분들은 젠더와 관련된 자연과학이나 진화생물학 자료들을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해본다. 생명체들이 왜 사랑하고 연애하도록 진화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도 그러한 저서 중 하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기 이전에 더 다양한 사람과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경험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영상 같은 간접 자료도 필요하지만, 그동안 만나지 않던 다른 지역과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비슷한 사람만 만날 때는 특정한 관점만 들으며 오히려 선입견이 강 해질 수 있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나게 될수록 인간이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 타인을 해하는 일만 아니라면, 그 누구도 타인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분명 더 나은 세상일 것이다. 159-160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시각에 익숙하고 그들의 뉴스만 접해온 이들은 이슬람의 그늘과 무지함, 잔혹한 뉴스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인류문명이 대개 중동 지역에서 시작됐음을 아는 사람들이나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중세 기독교도의 만행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 하게 이슬람이나 타종교를 폄하하지 않는다. 164
외로운 인생길에 내 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 편은 한 통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드나드는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인류애를 고민해야 할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더욱 자신의 위치를 중심이 아닌 경계에 세우는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배타적인 형제애와 신념은 담합이 되고, 굳건해 질수록 더욱 강력한 악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면 홀로 서야 한다. 191
4장 나를 이해하는 시간
그토록 자만하는 문화와 문명이 그저 자연의 변주이거나 표절 혹은 적응일 뿐임을 깨닫는다.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들은 식량을 안전하게 획득• 분배하는 방법론에 불과하다.
종교와 의술은 죽음과 질병, 고립의 두려움을 대면하거나 위로하는 방편이고, 교양은 무리를 확장 • 유지하는 기술일 뿐이다. 예술과 철학은 어떤가. 볕 좋은 곳에서 인상파가 태동하고, 숲이 가까우면 자연주의가 움트고, 일조량이 적은 음울한 곳에선 사색이 깊어진다. 인간은 스스로 자연을 극복하고 위대한 세계를 건설했다 고 믿지만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단 한 걸음도 자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천문과 지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과 상식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5
전쟁과 사회적 재난 같은 변수는 통제가 어렵지만 그 또한 상당수는 사회구성원들의 인식과 행동이 누적된 결과다. 인생의 합은 우연보다 통계에 가깝고, 변화나 몰라도 절벽보다 능선에 가깝다. 행운 역시 운명처럼 날아드는 유성보다는 실력과 선한 업이 차곡차곡 누적된 지질층에서 캐낼 수 있는 보석에 가깝다. 여기서 실력이란 시험 점수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삶의 변수를 더 잘 제어하는 능력이다. 214
매력 있는 사람의 요건은 다양하다. 외모나 재능, 언변 같은 타고난 요소도 있지만 재력이나 스펙 등 후천적 요소도 중요하다. 그러나 젊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매력을 상실하고도 꾸준히 빛을 발하는 것은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통한 균형감과 시야인 것 같다. 독서는 이런 매력의 형성에 큰 힘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 왕성하게 뛰놀며 생성된 근력이 평생 건강의 중추가 되듯, 일찍부터 형성된 풍부한 독서습관은 분명 더 깊이 있고 유연한 사고와 지적 능력으로 사회적 기회와 경쟁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238
꾸준하고 올바른 운동으로 단련된 신체일수록 소화할 수 있는 의상이 많아지듯, 책을 통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책꽂이의 책과 지식이 쌓이는 만큼 선민의식과 불통이 커진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지식은 음식량과 같아서 섭취할수록 증가하지만, 과식과 편식이 건강에 해가 되듯 편중된 지식 또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운동이 몸을 망치듯 자기과신에 빠진 독서는 사고를 왜곡시키고 위험한 언행으로 이끌기도 한다. 무능한 옛 선비들이 책만 읽으며 현실에 무지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장서 속에 고립된 영혼도 많은 것 같다. 241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며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더 도덕적이고 더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인간사 천태만상을 응시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덜 견고하고 덜 완고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43
운동도 독서도 방법일 뿐 목적이 아니다. 운동의 미덕이 허물어진 몸과 불필요한 군살들을 정리하며 건강을 되찾아주는 것이듯, 독서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내면과의 갈등과 헛된 욕망을 성찰하게 해 더 행복하진 않아도 더 불행한 사람이 되지는 않게 도와 준다는 점이다. 245
부정적인 뒷담화를 자제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시작해야 하고 동시에 서로 배려하며 개선해나가야 한다.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깊은 곳의 속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질투는 타인에 대한 것이기 이전에 자신의 성취욕구와 인정욕구에 대한 갈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너도 그 분야에 재능이 많은데, 한동안 쉬었으니 이번 기회에 계속해보면 어때?" 같은 인정과 동기부여의 방식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 좋다. 타인을 끌어내리기보다 성취동기를 자극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좋은 대화이고 좋은 관계의 바탕이기도 하다.
부러움이 적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첫 번째는 모든 성공과 성취, 소유와 누림엔 타인의 희생이나 상처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인생 법칙을 알게 되어서다. 무수한 사람들의 인연과 인과가 얽힌 사회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거대한 부나 명예를 일구는 초인은 존재할 수 없다. 작은 성공엔 작은 희생이, 큰 성공엔 큰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희생하는 이들은 가까운 부모나 자식일 수도 있고, 자신보다 관심과 지원을 못 받은 형제자매일 수도 있으며, 동료나 직원, 제자, 힘없는 하청업체나 다른 국가의 국민들 일 수도 있다. 257